베이글은 왜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일까? 가운데 구멍이 뻥 뚫린 베이글이 상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느긋한 주말 브런치를 먹을때, 수분이 없어 더 특별하게 쫄깃하다 못해 질긴 질감의 베이글을 천천히 씹을때마다 궁금하게 느끼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왜 가운데가 뻥 뚤려 있어야 하는거지? 드디어 오늘은 그 비밀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 이용재의 필름위의 만찬에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중년의 중국계 미국인 에블린(양자경)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어렵사리 운영하는 빨래방이 세무 당국의 조사를 받는 가운데 남편인 웨이몬드(키 호이 콴)는 이혼 서류를 들이밀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레즈비언인 딸과의 관계는 소원하며 춘절(중국 설)을 쇠기 위해 집에 찾아온 노부의 수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가뜩이나 엉망진창인 에블린의 삶에 또 하나의 엄청난 부담이 돌연 고개를 들이민다. 전 우주의 존립이 바로 그에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일까? 알고 보니 빨래방 에블린은 수많은 멀티버스(multiverse)의 한 에블린일 뿐이었다. 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모든 결정과 실패가 가지를 쳐 또 다른 우주를 낳은 결과, 무수히 많은 에블린이 각각의 우주에 존재하게 되었다. 원래 각 우주와 에블린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악한 ‘조부 투파키’가 그 모든 우주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파괴와 살육으로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말하자면 모든 우주의 흥망성쇠가 빨래방 에블린 한 사람의 손에 달린 가운데, 이야기는 한층 더 복잡한 국면으로 치닫는다.
먼저 악한 조부 투파키는 원래 다른 우주 에블린의 딸 조이(스테파니 수)였다. 과학자였던 그 우주의 에블린은 한 인간이 다른 우주의 대응하는 존재의 능력을 빌려 쓸 수 있는 ‘버스 점프(Verse-jump)’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를 자신의 딸에게 실험했는데, 극한까지 몰아붙인 탓에 모든 우주에 자유자재로 존재할 수 있는 악한 조부 투파키가 되어 버렸다. 그런 가운데 빨래방 에블린은 모든 우주의 에블린 가운데 최악으로 실패한 존재,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멀티버스를 악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로 낙점받았다.
인생이 실패의 연속이었던 탓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던 빨래방 에블린은 점차 각성하며 다른 우주 에블린의 능력을 버스 점프로 빌려와 조부 투파키와의 싸움에 나선다. 그 싸움 속에서 조우하게 된 조부 투파키는, 사실 자신은 이처럼 멀티버스를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공감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을 뿐이라며 빨래방 에블린에게 일종의 블랙홀을 보여준다. 바로 ‘에브리씽 베이글’을 형상화한 블랙홀은 실로 강력하니, 조부 투파키는 이를 통해 멀티버스 전체를 빨아들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를 해방시키려는 심산이었다.
베이글 형태의 블랙홀이라니 다소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SF의 색채가 깃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설정에 잘 들어맞는다. 일단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대를 의미하는 데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블랙홀과 결이 맞는다. 원래 베이글은 폴란드에서 비롯돼 폴란드계 유태인들을 통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름(bagel) 또한 ‘고리’를 뜻하는 고대 독일어가 이디시어(중앙 및 동부 유럽에서 쓰이던 유태인 언어) ‘begyl’로 옮겨져 오늘날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 원래 가운데의 고리는 우리의 엽전처럼 베이글을 한데 꿰어 들고 다니는 데 쓰였다.
그런 가운데 온갖 종류의 고명을 얹었다는 의미의 ‘에브리씽’ 베이글은 멀티버스를 암시하는 영화의 제목과도 통한다. 지역이나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에브리씽 베이글이라면 말린 마늘과 양파 부스러기, 통깨, 양귀비씨, 바닷소금 등이 기본으로 쓰인다. 많은 음식이 그렇듯 유래는 다소 불투명해 여러 사람들이 발명했노라고 주장하는데 대략 1976~1980년 사이에 뉴욕에서 등장했다. 현재 한국에서는 온갖 독립 빵집의 베이글이 난립하는 가운데, 고단백 밀가루와 적은 수분 함량으로 쫄깃하다 못해 질긴 질감을 제대로 살린 제품은 할인 양판점 코스트코에 있다. 개당 1000원꼴이다
각성한 빨래방 에블린은 다른 우주 에블린들의 능력을 빌려 조부 투파키와의 싸움을 가까스로 해내는 가운데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사랑의 힘으로 임하지 않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깨달음이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조부 투파키의 증오를 달랜 끝에 모든 우주의 평화를 회복한 빨래방 에블린은 세무 당국의 조사를 비롯한 일상의 행보를 다시 차분하게 밟아 나간다.
별다섯 평점 10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만한 작품입니다. 인간으로 50년 넘게 살았지만, 한 사람의 딸로서, 또 가족을 보살펴야 되는 입장으로서, 또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멀티 우주가 아니더라도, 한 생에서 멀티적인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인물들과 상황,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자의식과의 충돌은 삶을 고단하고, 불행하게 만들 뿐이네요.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메세지처럼, 어떠한 삶도 완벽할 순 없지만, 그 모든 삶을 다정하고, 친절하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내 삶을 이루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미 머리 속엔 매사 재고 판단하는 잣대들로 한가득 차있어 슬프네요.
지구 2023.4.1.22:20